본문으로 바로가기
반응형

그 동안 삼국지는 읽었어도 사기를 제대로 읽은 적은 없었다. 서점에 갔다가 원하는 책이 없어서 역사서들을 살펴보던 중 "사마천"의 사기가 눈에 들어왔다. 방대한 분량에, 많은 한자에...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 사기의 "본기" 열기"를 묶은 버전을 읽어보기로 했다.

본기(本記)는 태고로부터 한무제 이르는 2,508년 동안 제왕들의 흥망성쇠를 기술한 일종의 정치사이다. 열전(列傳)은 본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전기로, 일세를 풍미한 개인의 사적을 적은 것이다.

 



역사서이지만 본기와 열전이 소설 구성으로 되어 있기에 술술 넘어갔다. 그리고 책에 비춰진 중국의 장엄한 역사에서 비춰진 강렬한 진실 한 가지가 있었는데, 바로 "인간은 근본적인 욕망은 나라와 문화에 상관없이, 또한 시대와 상관없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몇 천년 전이라고 그냥 몸둥이를 부지하기 위해 먹고 사다가 죽을 궁리만 하지 않는다. 인간은 현재를 초월하려는 꿈을 가진 존재이다. 즉,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는 영웅, 또는 신(信)적 존재가 되고자 한다. <사기>에서 영웅주의로 나타나는 가장 많은 형태가 "입신양명"일 뿐이다.


사기에서 나오는 영웅의 모습은 다양하다. 각기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지혜, 혈연, 신체적 우월성, 그리고 허락된 우연)을 활용하여 자신이 꿈꾸는 영웅의 모습을 이뤄가는 인생여정에서 다른 인간을 짚밝고, 또는 다른 인간을 살리며, 또는 어떤 사람을 죽이고, 또는 자신이 죽는다.

손빈은 함께 병법을 배웠던 절친 "방연"의 배신으로 두 다리를 잘렸지만, 결국 제나라의 책사가 되어 조/위/한 춘추전국시대에서 나라를 지킨다. 그리고 방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스스로 명예를 회복하며 영웅이 된다.

진왕 정은 무소불위 권력에 대한 집착과 병적인 분노로 자신을 왕으로 만든 아버지 여불위를 유배시키고, 어머니를 감옥에 가둔다. 그는 중국 영토를 모두 통일하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며 "시황제"가 되었으나, 천하통일 이후에도 계속 되는 불안과 번민으로 "진인"이 되겠다는 망상으로 살게 된다. 그래서 불로초도 구하고, 만리장성도 쌓으며, 아방궁도 지었지만 어느 것도 그를 안심시킬 수 없었다. 그는 단지 자신의 분노로 수 백명을 일시에 생매장시키기도 했고, 그의 공포정치 앞에서 아무도 직언하지 않았다. 말년에 그가 맞이한 운명은 비참한 병으로 외롭게 죽는 것 뿐이었다.
(만약 사마천이 집필한대로 진시황제인 "진왕 정"이 진나라의 적통이 아니라, 한나라 장사꾼이었던 여불위의 아들이 맞다면, 그의 히스테리, 분노가 상당히 이해된다. 자신이 진나라의 혈통이 아니라는 컴플렉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이용해 권력을 가지려했던 아버지에 대한 분노는 그를 사이코를 만들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사기에서 내가 가장 관심이 간 영웅은 책에 기록된 장수나 왕들이 아닌, 사기를 집필한 "사마천"이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가 고자(鼓子)인 줄 알지 못했다. 사마천은 무제의 태사령이 된 시기부터 무려 19년에 걸친 기원전 91년에 <사기>를 완성했는데 , 130권의 526,500자의 방대한 이 책을 완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고난 때문이었다.
그는 <사기>를 집필하던 7년차, 당시 왕인 효무제에게 흉노와 용감하게 맞선 이능 장군을 단신으로 변호하다가 미움을 사서 투옥되는데, 거기서 거세까지 당한다. 남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극형을 당했으나, 사마천은 생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사명을 찾았다. 즉, "천하의 흩어진 기록과 구문을 망하하고 역사의 진상을 추구하여 왕조의 흥망성쇠의 역사를 저술하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였고, 심혈을 기울여 그 책을 완성하였다. 그가 집필한 책 덕분에 나는 오늘 인간을 배울 수 있었다.

어떤 자가 진짜 영웅인가? <사기>는 나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지금은 자본주의 시대이다. 자본주의에서 영웅은 돈 버는 사람이다. 단지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영웅인 것인가? 봉건주의에서 춘추전국시대로, 그리고 자본주의라고 해서 영웅의 본질이 바뀌는가?

영웅은 모두가 하기 싫어하고, 또한 보통사람이 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자본주의에서 상식적인 절차와 사회가 약속한 제도권에서 돈을 많이 벌었다면, 그는 분명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주고, 편의를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자본주의에서 돈 버는 사람은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돈을 많이 벌겠다는 결과에만 집중하며 부자가 되는 경우가 많고, 부자가 되고 나서도 자신이 어떤 영웅적 행동의 의미,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부자가 되는 과정에서, 그리고 부자가 되고 나서는 사마천처럼 자신만의 "사명의식"을 발견해야 한다. 그래야만 돈을 많이 번 이후에도 연민과 번뇌로 자신의 영혼을 죽인 시황제의 전처를 밝지 않을 수 있고, 손빈처럼 끝까지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다.

나도 언젠가 부자의 반열에 들어선다면, 아니 그전에 부자로 가는 여정에서 나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잘 받아들이겠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겠다. 내 삶에서 허락된 작은 사명을 발견하며, 영웅으로 살겠다.

 

반응형